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KIA 타이거즈/이모저모 (문단 편집) == [[KBO 신인상]] 잔혹사 == 의외로 많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1982년 리그가 시작된 이래 신인왕과 연이 없는 팀이다. 1985년 신인왕과 [[KBO 골든글러브]]를 거머쥔 [[이순철]][* 이 해 같이 데뷔한 선수가 바로 무등산 폭격기 '''[[선동열]]'''이다.]이 배출된 이후 2020년까지 35년 동안 타이거즈에서 신인왕을 배출해내지 못했다. 11번의 우승을 거머쥐는 동안에도 빼어난 신인이 나오지 못하거나, 그 해에 신인왕에 버금가는 활약을 했음에도 그 해에 더 괴물같은 선수들이 타 팀에서 나오면서 인연을 맺지 못했다. * 1989년에는 신인 [[이강철]]이 214.2이닝 15승 11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3.19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뒀으나, 태평양의 [[박정현(투수)|박정현]]이 19승 10패 2세이브에 평균자책점 2.15, 242.2이닝을 투구하며 신인왕 자리를 내주게 된다. * 1990년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한 [[이호성]]의 경우 그 해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할 정도로 준수한 성적을 보였으나 그 해 신인왕은 [[김동수(야구)|김동수]]의 차지였다. ~~[[이호성 살인 사건|그리고 이호성은 최악의 흑역사를 저지르게 된다.]]~~ * '''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[[이종범]]의 케이스로''', 1993년에는 걸출한 스타급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었던 한 해였고 특히 [[삼성 라이온즈]]의 교타자 [[양준혁]]과의 라이벌 구도가 그려졌다.[* 본래 양준혁은 1992 시즌에 프로에 데뷔할 수 있었으나 삼성이 [[김태한]]을 1차지명하는 바람에 양준혁이 2차지명으로 밀렸고, [[쌍방울 레이더스]]가 그를 2차 2라운드에서 지명했지만 삼성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그는 입대를 선택했고, 결국 1993 신인드래프트에서 삼성이 그를 1차지명하기에 이르렀다.] 결국 신인왕 투표에서 양준혁에 밀려 신인왕 타이틀을 놓치게 되었다. 대신 이종범은 [[1993년 한국시리즈]] MVP와 이듬해 리그 MVP로 신인왕의 설움을 풀기는 했고 [[이정후|아들]]이 신인왕을 받으면서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뤘다. * 2002년에는 [[김진우(1983)|김진우]]도 12승에 탈삼진왕을 차지하는 등 신인왕을 탈만 한 성적이지만 더 뛰어난 현대 [[조용준]]의 등장으로 실패했다. * 2006년, 최고 계약금 10억을 쥐고 입단한 [[한기주]]의 경우에도 데뷔 후 선발 및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수준급의 성적을 거두기는 했지만 그 해에 혜성처럼 나타난 [[류현진|MVP와 신인왕을 동시에 거머쥔 괴물급 투수]]의 등장으로 묻혔다. * 2009년, 최연소 [[KBO 올스타전|올스타전]] MVP와 [[2009년 한국시리즈|한국시리즈]]의 숨은 공신으로 활약했던 [[안치홍]] 역시 그 해에 유일한 순수 신인으로 신인왕에 도전했으나 후반기에 접어들어 약점이 노출되어 삽질을 거둔 끝에 0.235라는 [[멘도사 라인]] 급의 타율을 기록했고, 결국 중고 신인인 [[이용찬]]에게 자리를 내줬다. * 2012년에는 [[박지훈(야구선수)|박지훈]]이 불펜에서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신인왕에 도전했으나 [[서건창]]이 등장하면서 실패했다. * 2019년에는 [[전상현]]이 불펜에서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[[이창진]]이 중견수로써 좋은 성적을 펼치며 스탯티즈 WAR*로는 LG의 정우영보다 뛰어난 성적을 거뒀지만, 결국 신인왕은 [[정우영(야구선수)|정우영]]이 가져갔다. 하지만 2021년에 [[이의리]]가 [[최준용(야구선수)|최준용]]과 함께 신인왕 유력후보로 올랐고, 결국 신인왕을 수상하며 마침내 잔혹사를 끊어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